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기업 잡아두려면 '최고 인센티브 보장제' 같은 파격정책 필요"

입력 2023-06-04 18:20   수정 2023-06-05 01:29


지난해 말부터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역이 국내총생산(GDP)의 8할을 차지하는 한국 경제에 수출 감소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수출도 급감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국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무역협회의 구자열 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구 회장은 “한국 수출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 수출 감소는 중국 경제가 내수 자급형으로 전환하고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재정비하고, 국내 산업 기반도 전기자동차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 위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현상에 대해선 “외국 정부가 유치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 수준만큼을 한국 정부도 보장해주는 ‘최고 인센티브 보장제’ 같은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수출 부진으로 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적으로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역적자는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단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우리 수출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요.

“중장기 수출동력을 확보하는 게 우선입니다. 한국 무역수지 흑자 구조 유지에 상당한 기여를 한 중국의 경제 구조가 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내수 자급형 구조로 바뀌면서 그동안 중간재를 수출하던 한국 기업들의 수출길이 막힌 것입니다. 대표적 중간재인 기계업종의 중국 수출자립도(1=완전자립)는 2018년 0.67에서 지난해 0.8까지 높아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들어 4월까지 대중 수출은 1년 전보다 30% 급감했습니다.”

▷중간재 수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까.

“중국과의 분업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 윈윈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양국의 산업 내 무역지수가 4년간 0.347에서 0.416으로 오히려 높아진 것을 보면 한·중 간 무역은 지금도 활발합니다. 그동안 중간재를 팔고 소비재를 수입하는 등 수직적 관계였는데, 이를 수평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시스템 반도체, 배터리 소재, 고급 소비재 등의 중국 내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미래 전략산업에 대한 국내 규제를 풀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등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배터리, 전기차 등 일부 첨단산업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습니다.

“중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2002년 5%에서 지난해 14.4%로 뛰었는데, 한국은 이 기간 2.5%에서 2.7%로 점유율이 2%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이 아직 국산화가 더딘 하이테크, 첨단 기계장비, 정보통신 분야 등에 집중해 판로를 개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내수가 급성장하고 있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6개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공략해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 중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인도와 인도네시아 두 곳입니다. 인구 대국인 두 나라 모두 생산기지와 소비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보호주의 확산 속에 한국 기업들도 해외로 나가려고 합니다.

“과거 해외로의 이동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저위·중위 기술의 중간재 생산이 주목적이었다면 지금은 핵심 기술과 인력을 중심으로 한 이동으로 성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반도체, 전기차, 친환경 기술 등 첨단 미래 산업의 생산거점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 국가 전략기술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 정부도 미국 일본 등 외국 정부의 지원에 상응하는 투자유인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컨대 첨단전략산업 등을 해외에서 유치할 땐 동등한 수준에서 최고 지원을 보장하는 ‘최고 인센티브 보장제’ 같은 파격적인 정책 도입도 검토해야 합니다. 포스코퓨처엠이 캐나다 퀘벡주에 79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는데, 캐나다 정부는 이에 대한 인센티브로 최근 2900억원을 돌려줬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도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법인세 감면과 고용에 따른 지원금을 줍니다. 외국 정부가 주는 건 한국 정부도 줘야 합니다. 정책 검토를 정부에 제안하려고 합니다.”

▷기업들에는 어떤 과제가 있을까요.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도 국내에 R&D와 생산설비를 지속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서 나중에 보조금 수령을 조건부화한 사례 등을 반면교사 삼아 대비해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 오사카에 다녀오셨습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정상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만큼 간사이경제동우회와 관계를 맺고 국내 기업의 수출 및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한국과 일본 기업 간 협력이 무역뿐 아니라 제3지대에서도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제3지대는 구체적으로 어디인가요.

“아프리카입니다. 아프리카는 석유 천연가스뿐 아니라 니켈 코발트 등 2차전지 핵심 광물 등이 풍부합니다. 지난달 무협이 ‘한·아프리카 비즈니스서밋 공식만찬’ 행사를 한 것도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해서입니다. 일본 역시 자원이 부족한 제조업 국가이기 때문에 한·일 간 개발 협력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두 국가 모두 배터리와 반도체에 많은 광물이 필요하니 협력해 자원을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기존 관료 출신 회장들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무역의 구조적 전환기에 어려운 자리를 맡았습니다. 평생을 기업 현장에서 보낸 경험과 네트워크를 살려 무역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서 한국 무역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무협 회장 연임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원부터 시작해서 무역상사에서 17년간 근무했습니다. 봉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무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놓으셨다고 여러 곳에서 들었는데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연임 문제는) 하늘에 맡기려고 해요. 주변에서 하라고 하면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은 도전 즐기는 모험가…첫 代 이은 무협수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의 영어 이름은 ‘크리스토퍼 구(Christopher Koo)’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따온 것이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그의 성향이 반영됐다. ‘사이클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최근에 생긴 취미는 사진이다.

구 회장은 LS그룹 창업주 중 한 명인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2001년 LG전선 재경부문장, 사장, 회장 등을 거쳐 2013년부터 9년간 LS그룹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은 2021년 31대 무협 회장에 올랐다. 22~23대 회장을 지낸 구평회 회장에 이어 부자가 대를 이어 무협 회장을 맡은 첫 사례다. 그는 취임 후 무협으로부터 연봉과 차량 등을 받지 않고 있으며, 본인 차량 등으로 무협 업무를 보고 있다.

■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서울고,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LG상사 입사
△LG투자증권 부사장
△LG전선(현 LS전선) 부회장
△LS전선·LS엠트론 회장
△LS그룹 회장(2013~2022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2009~2023년)
△LS그룹 이사회 의장(2013년~ )
△한국발명진흥회 회장(2014년~ )
△제31대 한국무역협회 회장(2021년~ )


김재후/김형규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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